Korea Ice Hockey Association for the Disabled 대한장애인아이스하키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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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휠체어가 맺어준 인연.. "서른살 차이지만 친구랍니다" 2018-11-29 09:3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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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ad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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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경기 시흥시의 한 기업 강당에서 홍재화 씨가 김희서 양에게 아이스하키를 지도하며 웃고 있다. 홍 씨와 김 양은 2012년 휠체어 판매자와 구매자로 만나 지금까지 멘토-멘티 관계를 맺고 있다. 시흥=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홍재화 前 국가대표와 김희서 양
前아이스하키 패럴림픽선수 홍재화 씨, 휠체어 영업사원하며 김희서 양 만나
홍재화 씨 “운동 가르쳐주는 등 멘토 역할할 것”
김희서 양 “선생님은 내 고민 유일하게 이해”

 

“하키 스틱은 두 손으로 잡아야 해.”

23일 경기 시흥시 한 기업의 강당에서 휠체어를 탄 두 사람이 만났다. 패럴림픽 아이스하키 전 국가대표인 홍재화 씨(45)와 김희서 양(15)이다. 홍 씨는 자동차 트렁크에서 하키 스틱을 꺼내와 김 양에게 쥐여 줬다. 김 양은 10일 휠체어 전동키트를 개발한 소셜벤처 ‘토도웍스’가 주최한 장애아동 스포츠 체험 행사인 ‘세잎클로버 플러스 페스티벌’에서 처음 하키 스틱을 잡아 봤다.

13일 만에 다시 잡은 하키 스틱의 무게가 여전히 버거운지 김 양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면서도 가녀린 팔에 잔뜩 힘을 줘 스틱을 휘둘렀다. 퍽은 그대로 앞으로 미끄러졌다. 실제 장애인 아이스하키 경기에서는 썰매를 타지만, 이날은 두 사람 모두 휠체어를 타고 아이스하키를 연습했다. 이 휠체어는 두 사람을 이어준 끈이다.

○ 판매자와 구매자로 첫 만남

2012년 8월 서울의 한 대학병원. 당시 장애인 휠체어 영업사원이던 홍 씨는 이곳에서 김 양을 ‘고객’으로 처음 만났다. 김 양은 그때를 생생히 기억했다. “나처럼 휠체어를 타고 있는 사람이 휠체어를 번쩍 들 정도로 힘이 세서 너무 놀랐어요.”

홍 씨에게 김 양은 한번 만나고 말 고객이 아니었다. 휠체어를 사용하다 문제가 생기거나 아이가 크면 계속 수리하고 관리해 줘야 하기에 김 양처럼 어린 고객은 영원한 고객이 되기 마련이다. 더욱이 김 양은 홍 씨 딸보다 겨우 두 살 많았다. 어린 나이에 얻은 장애를 잘 이겨낼 수 있도록 돕고 싶었다. 그렇게 시작된 만남이 벌써 6년이다.

홍 씨는 지체장애 1급이다. 1992년 오토바이를 몰고 교차로에서 비보호 좌회전을 하던 그를 마주 오던 차량이 덮쳤다. 눈을 떠보니 병원이었다. 의사는 ‘하반신 마비’라고 했다. 당시만 해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시간이 걸려도 재활치료를 받으면 걸을 수 있을 줄 알았거든요.” 홍 씨는 고교 졸업 후 자동차 정비사로 일했다. 교통사고 후 가장 먼저 하고 싶은 일이 자동차 엔진오일을 교체하는 작업이었을 만큼 자동차 정비를 좋아했다. 하지만 그날 사고 이후 더는 자동차 엔진오일을 교체하지 못했다.

○ 받은 만큼 돌려줄 수 있기를…

‘앞으로 뭐 하고 살지, 결혼을 할 수 있을까.’

홍 씨는 더 이상 예전처럼 걸을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인 뒤 이런 고민이 떠나지 않았다. 그때 같은 병원에 입원한 휠체어 판매업체 ‘티오엠모빌리티’ 이성근 사장이 그에게 일자리를 제안했다. 이 사장 역시 지체장애를 갖고 있다. 그는 1999년 한국 최초로 장애인 아이스하키팀을 창단할 때 홍 씨에게 선수로 뛰어볼 것을 권유하기도 했다.

휠체어 영업을 하다 알게 된 정진완 대한장애인체육회 이천훈련원장은 홍 씨에게 운전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운동을 어디서 할 수 있는지 등 ‘장애인으로 사는 법’을 세세히 알려줬다. 홍 씨를 패럴림픽 아이스하키 국가대표로 이끈 정 원장은 패럴림픽 사격 금메달리스트다.

홍 씨에게 일자리를 주고, 꿈을 심어준 이들은 모두 자신처럼 지체장애인이었다. 홍 씨는 “이분들의 도움 덕분에 장애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졌고, 다시 사회에 뛰어들 수 있었다”며 “제가 받은 만큼 다른 장애인을 돕는 사람이 되려 한다”고 말했다. 홍 씨가 김 양의 멘토를 자처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 내 고민을 알아주는 유일한 ‘선생님’

김 양이 휠체어에 의지하게 된 건 초등학교 1학년이던 2008년이다. 당시 김 양은 뇌종양 수술을 받았다. 하지만 종양이 자란 자리가 척추신경을 관장하는 부분이라 척추신경까지 손상됐다. “휠체어를 타고 밖에 나가면 다들 저를 쳐다봐요. 이웃들은 우리 가족한테 ‘힘들겠다’고 하는데 엄마 아빠 동생은 정작 아무렇지도 않거든요. 오히려 그런 시선이 가장 힘들고 불편해요.” 김 양의 고민을 들은 홍 씨가 대답했다. “나도 예전에 그랬는데, 시간이 지나면 그런 시선을 덜 의식하게 될 거야.”

김 양은 홍 씨를 ‘선생님’이라고 부른다. 그러면서도 “친구 같다”고 했다. ‘다리로 걸어 다니는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고민을 알아주는 유일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휠체어를 타고 다니다 답답한 게 있으면 바로 선생님에게 물어봐요.”

홍 씨는 김 양이 운동을 계속 하길 바랐다. 선수가 되라는 뜻은 아니다.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장애인에게 운동은 사회로 향하는 문이 될 수 있다. 홍 씨는 장애를 얻은 뒤 운동을 통해 여러 사람을 만나면서 오히려 성격이 더 외향적으로 바뀌었다고 했다. 지금의 아내는 1990년대 말 유행하던 직장인 통신 동호회에서 만났다.

홍 씨는 올해 초 국가대표에서 은퇴했다. 현 회사에서 상무로 승진해 업무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시간이 날 때마다 장애아동을 위한 체육활동 재능 기부를 하고 있다. “운동을 하는 동안에는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어요. 나중에 희서가 운동을 하고 싶다면 언제든지 도울 겁니다.” 그런 홍 씨를 보며 김 양이 환하게 웃었다.

동아일보 조유라 기자 jyr010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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